|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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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6 키오쿠 이것은 '거짓말(lie)'일까, 아니면 단순한 사실의 '과장(exaggeration)'일까, 아니면 '현혹적 진술(misleading statements)', 또는 '실수(mistakes)', 또는 '지나친 수사(rhetorical excesses)'일까?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연구한다. 그중 가장 놀라운 발견은 사실 여부는 사람들이 어떤 진술의 거짓말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이런 것들이다. '말하는 이가 그 진술을 스스로 믿는가? 그가 의도적으로 속이고자 했는가?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어떤 이득을 얻고자 했는가?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가 사소한 문제인가? 혹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의 문제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비록 그 진술이 틀렸음이 밝혀진다 해도, 말하는 이가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고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이득을 취하거나 타인을 해치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좋은 의도를 위한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하얀(선의의) 거짓말이다.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직한 실수이다. 단순히 강조하려는 수사라면 그것은 과장이다. 2008-11-18 (0) |
p.76 키오쿠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실천해야 할 11가지를 정리합니다. 1.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배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디어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물론 이것도 결코 사소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들이 올바른 방향을 택했다는 것은 쟁점들을 그들의 시각에서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과 우리의 패배를 인정합시다. 2.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 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3.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4.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하여 말해야 합니다. 진보적 정책은 진보적 가치에서 유래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전문가인 척하는 관료주의적 언어를 버리십시오. 5. 보수주의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과 그 결과를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왜 그들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별 쟁점을 넘어 전략적으로 사고하십시오. 개별적인 정책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더 큰 도덕적 목표를 염두에 두십시오. 7. 정책안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십시오. 우리도 진보적인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를 만들어 봅시다. 8. 유권자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하며, 이는 꼭 그들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9. 단결합시다! 협력합시다! 진보주의적 사고의 여섯 가지 유형, 즉 (1) 사회경제적, (2) 정체성 정치, (3) 환경주의, (4) 시민 자유, (5) 영적, (6) 반권위주의적 진보주의를 상기해 봅시다.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형이 무엇인지ㅡ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ㅡ인지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지니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사고방식에서 시야를 넓혀, 공통된 진보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웁시다. 10. 수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십시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십시오. 항상, 모든 쟁점에 대하여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신념을 말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고 우리의 프레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프레임만이 우리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11.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우리의 모델을 작동하려면 진보주의적 지지자들을 향해 바언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오른편으로 이동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는 우선 진보주의 지지자들을 소외시키고, 부동층 사이에 보수주의 모델을 작동시킴으로써 도리어 보수주의자들에게 보탬이 됩니다. (~78쪽) 2008-11-18 (0) |
p.61 키오쿠 '저인지(hypocognition; 필요한 생각, 즉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어에 '슬픔'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008-11-18 (0) |
p.52 키오쿠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다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53쪽) 2008-11-18 (0) |
p.43 키오쿠 진보주의에도 몇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로서가 아니라 사고의 방식을 따지는 인지과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진보주의는 여섯 가지 서로 다른 기본 유형으로 나뉩니다. 이들은 모두 진보주의적 가치관을 고융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1. 사회경제적 진보주의(socioeconomic progressives)는 모든 것이 화폐와 계급의 문제이며,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경제적,사회계급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진보주의는 억압받는 집단이 빼앗긴 몫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3. 환경주의(enviornmentalists progressives)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신성함, 원주민 보호라는 견지에서 사고한다. 4. 시민 자유 진보주의(civil liberties progressives)는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여 자유를 사수하고자 한다. 5. 영적 진보주의(spritual progressives)는 종교나 영성의 형태를 취한다. 그들에게 영적 경험은 타인과 세계와 맺는 관계이고, 영적 실천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연관된다. 영적 진보주의는 가톨릭에서부터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여신 숭배, 이교적 마술 숭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 6.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s)는 기업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정당치 못한 권위를 추방하고 여기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한다. 이 여섯 가지 유형은 모두 '자상한 부모'의 도덕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이 중 한 가지 유형의 생각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더 보편적인 이념의 한 가지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며 이 모든 유형의 진보주의가 하나로 수렴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진정한 진보주의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 때문에 진보주의적 가치관을 공유하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44쪽) 2008-11-18 (0) |
p.40 키오쿠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데 둘 다 동등한 책임을 진다. 모든 어린이는 본성이 선하며 더욱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가정이다. 세상 또한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으며, 또 바꾸어야 한다. 부모가 할 일은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그 자녀들이 다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다. 보살핌(nurturance)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극서은 공감(empathy)과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아이가 언제 배고픈지, 언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지, 언제 악몽을 꾸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아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려면 자기 자신 또한 돌보아야 한다. 이 모두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그것이 힘든 일임을 잘 안다. 따라서 부모는 강해져야 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또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많이 알아야 한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가치는 공감과 책임이라는 가치에 자동으로 딸려 온다. 첫째로, 부모가 자녀와 공감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녀를 보호(protection)할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치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자녀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가? 범죄나 마약은 물론이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차, 담배, 음식에 들어 있는 유해한 첨가물로부터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진보주의 정치는 환경 보호, 노동자 보호, 소비자 보호, 질병으로부터의 보호에 중점을 둔다. 진보주의자들은 정부가 시민을 이러한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길 바란다. 뿐만 아니라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이 '보호'라는 관점에서 언급하는 데 익숙지않은 테러리스트의 공격도 여기에 포함된다. '보호'는 진보주의 도덕 체계의 일부이지만 아직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했다. 9.11 이후 진보주의자들은 그다지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자상한 부모와 진보주의자들은 '보호'에 대해서 진심으로 염려하기 때문이다. 보호는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 도덕 체계의 일부이다. 둘째로, 부모가 자녀에게 스스로 공감한다면 자녀가 충만한 삶을 누리고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랄 것이다. 만일 내가 불행하고 스스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녀들이 그들 스스로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도덕적 책임이다. 나아가, 자녀들을 다른 사람의 행복과 충만을 바라는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으로 가르칠 도덕적 책임이 있다. 이것은 보살피는 가정생활의 일부이며,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 밖에도 보살핌과 연관된 다음과 같은 가치들이 있다. - 아이가 충만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면, 이를 위해 먼저 아이가 자유로워져야 한다. 따라서 자유는 한 가치이다. -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따라서 기회와 번영 또한 진보주의의 가치이다. - 정말로 아이를 배려한다면,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공정은 한 가치이다. - 자녀와 연결되고 자녀에게 공감하려면 열린 쌍방향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정직한 의사소통, 극서은 한 가치이다. - 사람은 공동체에서 살며 그 공동체는 자라나는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공동체 건설, 공동체에 대한 봉사, 공동체 내의 협력이 가치가 된다. - 협력을 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하며, 신뢰를 쌓으려면 정지개야 하고 열린 쌍방향 의사소통을 실천해야 한다. 신뢰, 정직, 열린 의사소통은,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내에서 진보주의의 근본적인 가치이다.(~42쪽) 2008-11-18 (0) |
p.30 키오쿠 세상은 본래 험한 곳이고, 앞으로도 험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살아가기가 힘들다. 어디에나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으며, 절대 선이 있고 절대 악이 있다. 어린이들은ㅡ옳은 일을 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의미에서ㅡ나쁜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을 선한 사람으로 빚어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하고 엄격한 아버지가 필요하다.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 자녀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이들에게 순종하는 법ㅡ즉 옳고 그름ㅡ을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들이 그릇된 길로 갈 때 벌을, 그것도 고통스런 벌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질도 포함된다. 몇몇 보수적인 자녀교육 책의 필자들은 아이의 엉덩이를 막대기, 벨트, 나무 방망이 따위로 때릴 것을 권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체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비하면 도브슨은 리버럴한 편이다. "15~18개월 이하의 어린이를 매질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Dobson, The New Dare to Discipline, p.65) 체벌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이렇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체벌로 훈육받으면 그 일을 다시 저지르지 말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잘못된 일을 멀리하는 내면적 규율이 발달하여, 다음에는 더욱 순종적이며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벌을 주지 않으면 세상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도덕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내면적 규율은 이차적인 효과를 지닌다. 이 험하고 힘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내면적 규율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의 땅에서는 자기를 절제하고 이익을 추구하면 장차 부유해질 수 있고 자립 또한 할 수 있다. 따라서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서는 도덕과 물질적 번영이 서로 결부된다. 자녀를 도덕적으로 바로잡는, 바로 그 규율이 물질적 부를 약속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은 바로 자기 이익(self-interest) 추구이다. 기회가 있는 곳에서 규율을 갖추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물질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 여기서 도브슨은 엄격한 아버지의 세계관과 자유시장 자본주의 사이의 연관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자기 이익의 도덕성'으로 연결된다. 이는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자본주의를 보았던 관점이다. 애덤 스미스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ㅡ즉 자연적으로ㅡ모두의 이익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나가서 너의 이익을 좇으라. 그것이 모두를 돕는 길이니. 이는 잘 사는 것(well-being)을 물질적 부와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은유와 연관된다. 예를 들어 누가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나는 "당신에게 빚을 졌군요"("I owe you one", "I'm in your dept")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은유적으로 그에게 돈을 주는 것과 비슷하게 간주된다.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빚'졌기 때문에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요?'"라고 말한다. 이 은유를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연법에 적용하면 이렇다. 만약 모두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다시 말해 자연적으로 모두의 사적 이익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도덕적인 행동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선행을 하는 사람(do-gooder)'일 뿐이다. '선행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함으로써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방해한다. 선해을 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든다. 이 모델에는 '선한 사람(good person)'에 대한 정의도 포함되어 있다. 선한 사람ㅡ도덕적인 사람ㅡ이란 규율을 잘 따르며 순종적이고, 무엇이 옳은지 잘 배워서, 옳은 일은 하고 그른 일은 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여 부와 자립을 이룩하는 사람이다. 선한 아이는 자라서 선한 사람이 된다. 나쁜 아이는 규율을 배우지 못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며, 따라서 부유해질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 의존적이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규율을 갖추어 부유해지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이때부터 엄격한 아버지는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적으로 보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4쪽) 2008-11-18 (0) |
p.27 키오쿠 때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선거 유세를 보고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제목이 붙은 공화당 정책 공약집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염두에 두었던 질문은 이것이었스빈다. 이 각각의 쟁점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들 사이에는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예를 들어 만일 누가 공화단원이라면, 그의 낙태에 대한 입장과 세금 징수에 대한 입장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 그것은 환경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과 어떤 관계일까? 외교 정책에 대한 입장과는? 이런 여러 가지 입장들이 서로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나? 총기 규제 반대는 '소송 개혁'과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가? 이 연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저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군. 이 사람들의 입장은 모아놓으면 전혀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곧 창피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이 모든 쟁점에 대해 이 사람들과 정확히 반대 입장인데, 그럼 내가 가진 입장들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 거지?' 저는 이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2008-11-18 (0) |
p.17 키오쿠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르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우리는 프레임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프레임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cognitive unconscious)'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이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두뇌 안에 있는 구조물인데, 의식적인 형태로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ㅡ우리가 사고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ㅡ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도 프레임을 추론할 수 있다. 모든 단어는 개념적 프레임에 맞추어 정의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에서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또는 프레임의 집합)이 작동한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뭉네,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18쪽) 2008-11-18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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