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
|---|---|---|---|---|---|
![]() |
| ||||
우리는 때때로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없이 '일상적 하루에 지친다','지겹다' 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이런 우리들에게, '진정 나의 삶은 어떤가'하는, 즉 내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 책이다. 2007-10-28 (0)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내가 읽은 두번째 파울로 코엘료 소설이다. (첫번째는 "연금술사") 단 두 편만 읽었지만, 그의 소설에서 "깊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한마디로 너무 평이하다. 평이한 주제와 읽기 쉬운 간결한 문체, 적은 분량. 대부분의 독자들은 쉽게 읽고 쉽게 잊을거라 생각된다. 읽고 난 직후에 어느 정도 감동은 주겠지만, 그걸론 아직 목마르다고나 할까.. 심지어 이 책을 나에게 빌려준 친구는 (그는 상당히 하드한 독자다.) 코엘료가 책을 쉽게 찍어낸다고 불평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베로니카가 자살미수로 인해 정신병원에 강금되어 치료를 받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 코엘료가 말하는건 단순하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라.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인지하며." 죽음을 앞둔 사람이 오히려 삶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는건 이미 너무 흔한 소재다. 나에겐 오히려 "정신병원의 삶"이란 소재가 더 끌렸다. 나에게도 베로니카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에 이 책에서 서술된 정신병원의 생태와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느끼는 베로니카의 심리 변화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에 본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제대로 시팎스런 영화에서도 정신병원이 무대였는데, 여기서도 나름대로 공감을 느꼈던 걸 보면 난 "정신병원"이라는 소재에 유독 약한 것 같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자면, 베로니카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전개하는데,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전개가 "죽음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라는 주제를 흐릿하게 만드는건 아쉽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야기가 자꾸 빙빙 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한번 읽어볼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다. 삶에 지친 이에게는 가벼운 기운 전환용으로 권할만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왜 이 말이 떠오르는 걸까.. "아름답게 피기 보다는 격렬하게 지고 싶다." 2007-07-17 (0) |
아마 파울로 코엘료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연금술사"라는 소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의 전개방식이나 문장체들이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대체 결말이 어떻게 된다는거야? 라는 식의 궁금증 때문에 출근시간도 잊고 새벽녘까지 읽게 되는 마력(?)의 소유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단순히 일상에 의미(?), 흥미(?)를 잃은 평범한 한 여자가 자살을 시도한다. 큰 시련이 있던 것도 누구에게 실연을 당한것도, 그렇다고 거액의 카드빚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세상이 재미없댄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죽는게 쉬울리가 있을까. 자살 시도는 실패하게 되고 정신병원에서 깨어나게 되지만 자실시도용으로 먹은 대량의 수면제 때문에 심장이 망가져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뭐, 죽는 시간이 조금 더 연기된 것 뿐인데~ 하지만 "삶"이란 것을 내 스스로 선택해서 끝내는 입장에서 누군가가 거두어 가는 입장으로 바뀌게 되니 점점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삶에 대해 좀 더 용기있어 지고, 적극적이 되다보니 안보이던, 그리고 잃고 있던 것들이 하나두울 생기게 되고...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젠 죽기가 싫은데.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잃게 되는 시간이 오면, 그제서야 그로인한 상실감과 소중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건 베로니카 뿐만은 아닌것 같다. 어떤이의 말대로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없이 살아가자"처럼은 못살겠지만서도 어리석은 우를 범하며 살진 말아야지. 2006-05-23 (0) |
이미 오래전에 힛트치고 이제는 좀 거품이 빠져버린 베스트셀러다. 물론 여전히 잘 팔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 힛트를 치고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더불어 동반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는 출판사와 작가의 명예와 돈방석으로 연결된다. 물론 '돈방석'까지 연결되려면 적어도 이문열이나 최인호, 김훈 정도의 인기는 누려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류의 서적들은 쓰기도 어렵고 내기도 어렵고 인기를 누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또한 인기를 누려도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기껏해야 인문사회과학은 3천부 정도 팔리면 만족한다고 한다) '돈방석'과는 거리가 멀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라는 책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의 다른 저서 까지도 더불어 동반상승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결과를 얻어냈다. 아마도 그의 전작들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팔려 돈을 더 벌 수 있었을텐데 그로서는 아쉽겠다. 내가 파울로 코엘료를 접한 것은 어느 한 일간지의 서평란을 통해서였고 당시 그다지 유심히 읽지는 않았다. 이후 그의 저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것은 봤지만 역시 관심 밖이었다.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소설류는 나의 관심밖이다. 물론 소설도 관심있긴 하지만 집에 켜켜히 쌓아둔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으려면 다른 분야는 일단 뒤로 미루어야한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서점에서 그의 이름과 책 제목을 무수히 많이 접했다. 그.럼.에.도. 나는 얼마전까지 그를 경영/실용서적의 저자로 알고 있었다. 왜냐면 라는 제목이 어쩐히 11분안에 또 뭐 끝내기, 기존의 것으로 새로운 것 창조해내기 정도로 치부해버려 아예 무시했기 때문이다. 난 실용서적에 대해서는 약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책들이 책의 내용에 비해서 지나치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이내 못마땅하고 XX열풍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뽑아져나오는 책들은 책으로도 생각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야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고 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좀 힘들더라도 아무 책이나 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코엘료를 코엘류 감독 동생쯤으로-헉 이건 아니다- 생각하거나 실용서 저자로 알고 있었고, 그가 소설가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전이다. 동생 방에-동생은 책을 잘 안읽는 나보다 더 안읽는데 요즘 얘가 책을 좀 사고 있다- 있던 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의 나이 지긋한 수염잘 뽑아진 아저씨(그의 사진에서 풍기는 그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수염도 한몫했을 것이다. 난 이런 수염을 좋아한다.)가 쓴 소설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의 경험. 세 차례나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록밴드를 결성하고 극단에서도 활동했던 그런 경험을 토대로 씌여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베로니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열정이 없는 일상에 비관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이런 여기는 정신병원. 그녀는 곧 죽게된다는 의사의 말에 올히려 조금씩 생의 의지가 생겨나는데... 그녀가 죽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젊음이 가고 나면 너무 뻔한 내리막길 인생이 눈에 선했고, 남는 것은 노쇠와 질병들 뿐. 살수록 오히려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두번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나쁜 일들을 그녀라는 개인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녀를 따라 자살해야한다. 어느 인간에게나 남은 것은 노쇠와 질병뿐이요, 한 개인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들을 막을 힘이 없다. 무기려한 인간. 하지만 모두가 다 똑같이 느끼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본인의 모습을 느끼지만 다른 곳에서 생의 의지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이는 베로니카와 같이 자살을 결심한다.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고시에 매달리다 입사시험준비하다 나이먹고 나이제한에 걸려 그나마도 하던 짓 못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한다. 또 다른 직업 알아보자니 그 방면엔 내가 아는 바가 없고 능력도 없다. 장사를 하자니 장사는 아무나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세월보내고 어느 덧 나이는 40. 아 내가 뭐하는건가. 이 나이먹도록 뭐했나. 곧 지천명이라는 50살인데, 그러다 60, 70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내 주관이 없이 남들 사는대로 따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내가 뭘 할지는 몰라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알고 있다. 베로니카는 이와 같은 무기력한 남의 인생을 따라가려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기력하다. 그저 하루하루 세끼 밥먹고 시간보내며 밤이되면 자고 아침부터 다시 반복되는 생활을 할 뿐이다. 그러다 일년, 이년 시간 보내고 아 나이먹다 늙어 죽는 거다. 차라리 병에 걸려 죽을지언정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기를 기다리며 살기는 싫다. 그런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아 내가 너무 인생을 낭비하며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구나 하고 깨우치겠지. 죽을 때 생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생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는 베로니카에게 뻥쳤다. 베로니카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 있던 곳의 정신병원 의사는 그녀에게 당신은 4-5일안에 죽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이쿠. 그럼 날 왜 깨운거야? 그냥 죽게 하지? 의사로서 도리있나? 죽겠다는 사람도 살려야 의사지. 난 아무 잘못 없소. 의사는 잘못없다. 그가 잘못이 있다면 베로니카가 멀쩡한데도 4-5일 안에 죽는다고 말한 것일 뿐. 하지만 오히려 베로니카는 그 때문에 4-5일 안에 생에 대한 의지를 살려냈다. 멋지다 의사양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역자 이상해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차이는 이것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건 알지만 죽음을 실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이때 써먹어도 되는건가? 철학을 헛공부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사르트르의 이 말을 이 책의 부제로 달고 싶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2006-03-27 (0) |




( 3.6 / 18 )
(



